내가 거래(투기 포함), 모멘텀 플레이를 안하는 이유

맘퐁


한국이든 미국이든, 가치 투자자든 거래자든 시장 참여자는 각자의 신화를 쓰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역사를 반복한다. 그것이 자산을 전부 잃고 시장에서 강제 퇴출이 된 것이든, 소원해진 가정을 위해서든, 악화된 건강을 위해서든, 각자가 설정한 자본 손실에 도달하여 자신이 떠날 때를 받아들이는 것이든 간에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죽을 때 까지 투자를 지속한 이는 워렌 버핏과 친구들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꾸준히 말한다. 투자가 너무나 즐겁다고.

피터 린치는 세기의 모멘텀 플레이어이며, 제시 리버모어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기의 투기자이다.

두 사람은 명백하게 거래자와 투기자의 차이를 가지지만 완벽한 공통점은 강제성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빨리 떠났다는 것이다. 왜 떠났을까? 지쳤기 때문이다. 왜 지칠까? 의미가 없어 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자본 시장을 결코 즐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돈(실적)을 좇았으며 지식 체계의 성장을 결코 즐기지 못했다.

즐기는 이와 즐기지 못하는 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
바로 자본 시장을 심리 게임으로 여기느냐, 아니면 지식 체계의 산물로 여기느냐의 차이로 보인다. 제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고, 린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기업의 이익 모멘텀으로 시장이 얼마나 빨리 이것을 받아 들일 수 있느냐'일 것이다. 

즉, 버핏이 제일 중요시 하는 기업의 지속성이 빠져있다. 대부분의 참여자는 지속성이 아닌 휘발성만 존재하는 즉각성만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즉각성의 최정점 플레이어가 피터 린치라고 할 수 있다. 지속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휘발성은 수익과 등가 교환되고 남는 것은 오직 돈 뿐이다. 돈이 크게 의미 없어 지는 순간 이 게임은 끝이 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질면에서 린치는 충분히 지속성을 추구하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겠으나, 증권사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즉각성을 단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기 리 루도 마찬가지였으나 멍거가 리 루에게 자본을 투자하여 리 루는 즉각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튼 시장에서 떠나는(혹은 떠나게 되는) 이들은 자신이 갈고 닦은 기술의 패턴이 더 이상 시장에서 통하지 않거나, 여전히 통하더라도 도저히 그것을 지속할 에너지가 없다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끝이 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성공한 1세대 가치 투자자(Y2K 시절)들이 별안간 시장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하는 이유도 그들은 시장을 심리 게임으로 크게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들의 주식 성공에 대한 접근 방식은 분기실적 파악, 정보, 발품 등 흔히 노력이라고 불리는 무엇이 핵심이기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것을 지속할 에너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평생 공부했던 것은 비지니스의 지속성이 아닌 비지니스의 즉각성이기에 크게 벌어 들인 자본 또한 한 곳에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죽을 때 까지 이렇게 즐거운 시장에 머물고 싶다. 건강을 잃지도, 가족을 잃지도, 자유를 잃지도 않으면서 매일 탭탠스를 추면서 지금과 같이 비지니스를 공부하고 싶다.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투자에 뛰어 들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만큼 나는 화려한 즉각성이 아닌 꾸준함의 지속성을 연구할 것이다.

그래야만 지식의 향연이라는 지속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이 시장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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