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쓰는 투자 편지 : 8. 이것을 지키지 않았던 나의 투자 실패 썰

아들아 저번 편지는 꽁초 투자를 할 때 어떤 요소를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다뤘었다. 이번 편지에는 투자를 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키지 않았던 대가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나의 과거 투자 실패 경험을 남기마.

# 경영진이 신뢰할 만해야 한다

대가들의 서적을 읽어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경영진이 신뢰할 만 해야 한다.' 이 말을 투자자 입장에서 살펴보면 경영진은 회계 부정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며, 주주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며, 회사를 발전시키는데 유능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버핏은 투자를 결정할 때 경영진보다 사업의 내용을 우선하여 보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경영진의 가중치를 낮게 두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이 아무리 유능해도 사업의 내용이 어려우면 아무리 유능한 경영진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버핏 자신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원래 방직 사업을 하던 기업이었고 버핏은 10년 여간 방직 사업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방직 사업에 소속된 노동자의 생업을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국 방직 사업은 실패했고 버핏은 사업을 철수하게 되었다.

버핏은 지금도 여전히 경영진의 자질을 사업의 내용만큼 중요시 여긴다. 경영진은 우리의 동업자이자 회사의 결정권자이다. 이러한 경영진이 허튼 마음을 먹으면 소액 주주인 우리는 물론 대주주도 사실상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버핏도 살로먼 사건으로 크게 다쳤던 적이 있다.

경영진의 유능함은 우리가 면밀하게 파악할 길이 없지만, 도덕적 기질과 투자자에 대한 진정성은 재무제표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회계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고, 배당을 꾸준히 주는 의지로도 충분하다. 이 정도만 꾸준히 실천하는 경영진이라면 충분히 믿고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이 투자는 정말 고심하고 또 고심해야 한다.

현재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대주주이자 경영진의 신뢰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경영진의 도덕적 의지를 꼭 확인하고, 내 스스로가 경영진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남는 것은 오직 고통 뿐이다. 투자에서 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경영진을 무시했던 나의 최후. 투자 실패 썰

2015년 내 인생 두 번 다시 없을 열정으로 투자 공부를 미친듯이 했고, 드디어 천만원으로 첫 실전을 치루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15년 상반기에 천만원이 천오백만원이 되어 있더구나. 나는 투자의 정도를 알았다고 생각했고, 황금 거위를 가졌다는 자신이 있었다.

상반기에 첫 승전보를 기분 좋게 올렸던 나는 하반기에 전재산 1억으로 다음 전투를 치루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를 나락에 빠트리는 이 기업을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다. 당시 이 기업은 내 눈에 재무가 너무나 완벽했었다. 아니, 지금 봐도 당시의 재무는 여전히 멋지구나. 이 기업은 시가총액 만큼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안전 마진이 확실하다 판단했었다. 이익률은 20%, ROE 15%, 부채 비율 15%, PER 5 정도였고 쓸 데 없는 비용도 늘어나지 않는 기업이었다. 내 눈에는 마치 조선의 씨즈캔디로 보이더구나. 기다리기만 하면 돈을 쓸어 담을 것만 같았다. 해외에 진출해 있었고 성장도 매년 적절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시드 중 30%나 이 기업에 투자를 했다. 살면서 처음 해보는 큰 배팅이었다.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5년만 기다리면 3천 만원이 적어도 6천 만원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철저히 믿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조사를 하면 할 수록 계속 잡음이 들리기 시작하더구나. 경영진은 그 많은 현금을 땡전 한푼 배당하지 않았고, 그 돈을 투자에 써야 한다며 변명했지만 결코 어떠한 투자도 없었다.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불안을 느낀 소액 주주들은 결국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주주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주행동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10년 전에는 그러한 정보를 얻기가 아주 힘들었다. 겨우 투자 1년 차인 20대 중반에 불과했던 그 때의 나는 대가들의 책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3% 룰부터 시작해서 온갖 실전을 처절하게 겪어야만 했다. 손절하면 되지 않았냐구? 기업이 달라진 것은 없었기에 대가들에게 배운 원칙을 나는 도저히 어길 수가 없었다. 경영진과 싸워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리고 법과 제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3% 지분을 겨우 모아 임시주총을 개시한 우리의 당시 주주행동의 내용은 이러했다.
1.배당을 지급하라. 2.자사주를 매입하라. 3.우리가 추천하는 사외이사와 4.감사를 선임하라. 이 중에 과연 하나라도 안건이 통과가 되었을까? 어림도 없었다. 대주주와 경영진은 우리를 얼마나 바보로 여겼는지 회유책이랍시고 겨우 무상증자를 하였다. 우리는 제도권에 울부짖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시장의 불법을 지켜야 하는 거래소는 오히려 한통속이었다. 비슷한 시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어처구니 없는 합병도 있었다. 얼마전 1심 무죄로 나왔지만, 나는 전혀 그 결과를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우리를 결코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너무 이른 시기에 깨달아 버렸다.

시간이 지난 후 다음 분기 보고서가 나왔다. 그런데 재무가 이상했다. 자산이 어디로 이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핵심 사업이 이상하게 변경되기 시작했다. 회사가 변했기에 나는 재무제표를 보고 난 직후 아무 미련 없이 손절할 수 있었다. 나는 이때 드디어 이 지옥 같은 회사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리고..나는 보기 좋게도 -34% 손실을 확정지었다. 천만원이 넘는 손실이었다. 너무나 뼈아픈 패배였고, 당시의 나로서는 경영진이 이렇게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 후 그 기업은 그것을 시작으로 더욱더 노골적으로 회사의 자산을 빼먹기 시작했다. 그런 회사가 아직도 상장이 되어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10년이 지난 현재 주가는 98% 폭락한 상태다. 그 회사는 바로 한국에 상장된 중국 회사였고, 대주주와 경영진 또한 중국인이었다. 애초부터 그들은 우리와 함께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이들이었다.

경영진 주가 회계 조작
오지게 조작 당했고 나는 노려졌다. 그리고 당했다..

경영진을 잘 보라는 대가의 말을 그때의 나는 그저 사업을 잘하는 능력을 확인하라는 뜻으로만 이해했었다. 경영진의 기질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버핏의 말을 그때서야 이해했고 실감할 수 있었다. 아들아 너는 결코 경영진의 의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경영진을 신뢰할 수 없다면 결코 그와 동업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어긴 대가는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하다.

오늘의 편지를 정말 가슴속 깊이 간직하여 투자에 임하길 바라며, 다음 편지에는 이제 까지 알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기업에 실제 적용하여 기업을 탐색해보마. 내가 활동하는 '가치투자연구소'라는 카페에 기업 분석 공모전이 이번에 시작되었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썼던 적합한 기업을 한번 공모해볼 생각이다.

댓글 쓰기

1 댓글

deep_da님의 메시지…
사업의 내용, 재무적 안정성과 기업가치 만큼 중요한 경영진의 자질.